엉망진창 메르스 사태, 뒷날이 더 걱정이다
노환규 전 의협회장 메르스 특별기고
TV 방송, 특히 종합편성방송은 하루 종일 중동호흡기바이러스(메르스) 이야기다. 하루에 ‘메르스’라는 단어를 아마도 1000번은 족히 듣는 듯하다. 며칠 전 라디오를 듣던 중 광고에까지 메르스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었다. 다름 아닌 메르스데스 벤츠 광고였다. 혼자 웃고 말았는데, 다음 날 같은 광고를 들으면서도 또 깜짝 놀라는 나를 보며 어느새 메르스라는 단어에 알레르기가 생긴 듯 저절로 귀가 기울여지는 본능이 발동하고 있음을 알았다.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메르스, 불과 지난 보름 사이에 대한민국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 메르스 바이러스란? ]
메르스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1960년대에 처음 그 존재가 알려진 코로나 바이러스의 한 종류다. 바이러스가 왕관 모양을 띄고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중 사람에게 염증을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는 지금까지 6가지 종류가 알려졌다. 그 중 하나가 2003년 중국에서 발생했던 사스(SARS) 바이러스이고 지금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바이러스는 2012년에 발견된 6번째 코로나 바이러스다.
[ 왜 떠들썩한가?- 나쁜 소식 ]
1. 기본적으로 전염병
사람 사이에 퍼져나가는 전염병이 위험하다면, 병이 옮겨질 수 있다는 그 자체가 공포다.
2. 높은 사망률
메르스 바이러스로 인해 떠들썩한 첫 번째 이유는 높은 사망률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전염병(감염성 질환)인 메르스 바이러스는 2012년 9월에 처음으로 중동에서 발견된 생소한 바이러스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까지 23개 국가에서 1000명이 넘는 감염자를 양산했고 이 중 약 40% 가까운 사람들이 메르스 바이러스로 인해 사망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 첫 메르스 감염자가 진단된 것은 지난 5월 20일이었는데, 그로부터 17일이 지난 6월 6일 현재 메르스 확진을 받은 환자 50명 중 4명이 사망하여 우리나라에서의 현재 사망률은 8%로 중동보다 낮다.) 다른 사람에게 전파시키는 감염력은 독감 등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비해 매우 낮지만 높은 사망률로 인해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준다.
3. 치료제와 백신이 없다
메르스 바이러스를 직접 죽이는 약물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고 예방을 위한 백신이 없다는 사실이 공포감을 주고 있다.
4. 새롭게 출현한 바이러스
메르스 바이러스는 2012년에 처음 발견된 새로운 바이러스다. 기존에 없던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전파력과 전파방법 그리고 위험도 등 바이러스가 나타내는 다양한 양상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대응하기 힘들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는 변이도 잘하기 때문에 현재는 낮은 전염력을 보이고 있지만, 전염력이 높은 변종 바이러스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어 초기에 두려움이 크다.
[ 그러나 다행스럽고 좋은 소식 ]
1. 전염병이지만 전파력이 낮다.
메르스 바이러스 감염은 모두 감염된 환자와의 직접 접촉에 의해서만 일어난다. 즉 공기 중에 떠도는 바이러스로 인해 감염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분들이 메르스 환자가 지나간 자리에만 가도 감염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환자의 호흡기에서 나오는 비말(침방울), 그리고 비말이 묻은 손이나 직접 접촉한 물건을 통해 전파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발생한 메르스 바이러스 감염은 거의모두 병원 안에서만 발생했다. 집에서 감염된 사례가 소수 있었지만, 옥외에서 발생한 감염은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2. 사망률은 높지만 건강한 사람에겐 위험도가 거의 없다.
일단 감염이 되면 독감(인플루엔자) 등에 비해 사망률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사망은 폐질환이 있거나 신장질환, 암, 당뇨병 등 원래 병이 있는 사람에게 일어나며 면역력이 정상인 건강한 사람은 감염이 되지 않거나 감염이 되어도 가볍게 앓고 지나간다.
3. 특효약은 없지만 다양한 치료방법이 있다.
치료제가 없다는 것은 특효약이 없다는 것일 뿐이다. 항바이러스제, 2차 감염을 막기 위한 항생제, 면역 증강제, 호흡을 보조할 인공호흡기 등 다양한 치료방법을 통해 치료할 수 있다. 사망은 심각한 병이 있는 경우에만 발생하고 있다.
4. 변종 바이러스가 아니다.
국내에 들어온 메르스 바이러스에 대한 유전자 분석 결과 기존에 중동에서 발생한 메르스 바이러스와 다르지 않음이 밝혀졌다. 다만 그 사실이 중국에서 먼저 발표되었다는 것이 유감이다.
[ 정부는 무엇을 잘못했는가? ]
이번 메르스 사태에 정부 대응에 대해 비난의 소리가 높다. 그런데 정부는 강력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정부가 잘못한 부분을 지적하자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하지만 간략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사전 준비의 부족
메르스가 발견된 것은 2012년이고 2014년 봄 중동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발생하여 총 23개 나라에서 발생했다. 미국의 경우 2명의 메르스 환자가 입국하였으나 철저한 사전준비가 있었기에 조기에 차단돼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당시 감염병관리센터장은 “조만간 일어날 일이어서 놀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달랐다. 메르스 관련 긴급대책회의를 몇 차례 했다고 했지만 그뿐이었다. 매뉴얼도 만들지 않았고, 일선의 의료진들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았다. 방역을 책임지는 당국이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다. 격리시설도 준비하지 않았고, 메르스 환자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 그 어떤 사전 대책도 가동되지 않았다.
2. 불가사의할 정도로 안이한 초기 대응
중동에서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처음으로 국내에 들어온 환자를 진료한 의사가 “이 환자가 메르스가 의심되니 검사를 해달라”고 질병관리본부에 요청했을 때 질병관리본부의 담당자는 두 차례나 검사를 거부했다(메르스 검사장비는 질병관리본부에서만 갖고 있었다). 화가 난 환자의 보호자가 “윗선에 직접 얘기하겠다”고 하자 질병관리본부 직원은 마지못해 검사를 시행하면서 의사에게 “메르스가 음성으로 나오면 당신이 책임을 져라”고 협박했다. 이 환자는 양성으로 나왔다. 이로써 5월 20일 최초의 메르스 양성판정 환자가 발생했지만 비상상황에 돌입했어야 할 질병관리본부는 다음 날인 5월 21일 체육대회를 열었다. 환자와 현장에 대한 즉각적인 역학조사와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3. 컨트롤 타워의 부재
정부는 사전에 준비된 매뉴얼도 없었고, 전문지식도 없었다. 전문지식으로 무장하고 소신과 책임으로 무장한 컨트롤 타워가 없으니 모든 대책이 뒷북이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으며 시시각각 내려져야 할 긴급하고 단호한 결정들이 내려지지 않았다.
4. 정보 비공개
정부는 메르스에 대한 첫 확진판정이 나온 후 18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메르스와 관련한 각종 정보를 비밀에 부치고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메르스 환자가 다량 발생한 의료기관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물론 지정병원의 명단조차 1차 발표에서 공개했다가 이내 비공개로 바꾸었다. 현재까지도 메르스와 관련한 발생 현황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그 어떤 방법도 없다. 이러한 정부의 비밀주의는 결국 메르스 감염 확산을 초래했고 국민의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정부의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다.
[ 초기의 정보 공개는 왜 그렇게도 중요했는가? ]
대한의사협회와 국민이 줄곧 정보공개를 요청하는데도 정부는 관련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다른 나라에서도 연일 대한민국 정부가 메르스와 관련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을 비난하고 있다. 정보 공개는 왜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1. 정보 공유는 메르스 확산 방지에 중요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6월 7일 오전 현재 메르스 확진환자 수는 총 64명이며 이 중 평택성모병원에서 감염된 환자는 36명,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된 환자는 17명이다. 그런데 삼성서울병원에서 현재까지 17명의 감염을 일으킨 14번째 환자는 평택성모병원에서 옮겨온 환자다. 정부가 일찌감치 메르스 확산의 발원지가 평택성모병원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면 삼성서울병원에서 일찍 14번 환자의 위험성을 알았을 것이고 일찌감치 격리 조치함으로써 확산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가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비공개함으로써 제2, 제3의 삼성서울병원이 앞으로도 나올 위험이 있다. 환자가 병원에서 병원으로 옮겨가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그리고 메르스 감염은 병원에서 발생하고 있다. 정보 공유는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2. 비밀주의는 불신과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전염병 위험관리의 첫 번째 원칙은 투명한 정보공개다. 정부의 비밀주의는 질병의 확산을 불러왔을 뿐더러 시민들의 불신과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모르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민 간 정보 공유가 어려웠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SNS를 통해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급속히 퍼져나가는 시대다. 정부가 정확한 정보를 조기에 공개하여 시민들과 공유했어야 했다. 정부가 과장된 공포를 가라앉히지 못하는 이유는 정부가 정보를 비밀리에 감추는데다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3. 비공개는 국민의 알 권리와 시민의식 무시한 처사
어느 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는지는 의료진뿐 아니라 국민에게도 필요한 정보다. 그것은 국민이 자신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주어진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감염 위험기간 동안에 평택성모병원의 병실이나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위험도를 점검할 권리가 있다. 정부 당국이 아무리 철저히 조사한다고 하더라도 방문자들을 일일이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 공포심, 합리적인 수준인가? ]
현재 1000여 곳 이상의 학교가 휴교령을 내렸다. 학교에서 메르스 감염이 될까 두려운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들은 취소되고 있고, 나중에 메르스 확진을 받은 의사가 잠복기에 다녀간 쇼핑몰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물론 메르스는 병원밖 감염이 전 세계적으로도 한 차례도 보고된 사례가 없다. 그래서 권위 있는 과학잡지인 《네이처》의 시니어 리포터도 최근 “메르스는 병원 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사람 간에 전염될 뿐 기본적으로 사람 간 전염을 일으키는 휴먼 바이러스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단 한 례도 보고된 사례가 없는 옥외 감염을 걱정해서 휴교령을 내리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조치일까? 그렇지 않다.
지금 우리나라 정부는 메르스 확산방지라는 과제와, 메르스 공포방지라는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있는데, 이 두 가지 과제 모두 실패하고 있다.
[ 예고된 재앙 ]
지금의 재앙은 예고된 상황이다. 우선 보건복지부 내에 전문가가 없다. 복지부만 있고 보건부는 없는 셈이다. 보건복지부 장관과 차관 모두 보건 분야의 비전문가이다. 질병관리 본부도 취약하고 의료 인력은 더욱 취약하다. 보건복지부 예산의 96%가 복지예산이고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관은 34명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34명 중 32명이 임시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다. 비전문가들이 보건당국에 포진해 있으니 제대로 준비가 될 리 만무하다. 또한 심각한 국면을 맞게 되어도 우왕좌왕하는 것이 당연하다.
집중적인 메르스 환자를 양산한 다인실 병실구조는 어떤가. 중동에서 사람 간 전염이 적었으나 우리나라는 모두 병원 내에서 사람 간 전염이 일어났다. 그것은 여러 환자들이 밀집되어 생활하고 보호자가 상주하며 방문객 제한도 없는 진료환경이 초래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진료환경은 ‘값싼 의료’를 지향해왔던 정부 정책이 불러일으킨 예고된 결과다. 모두가 예고된 재앙인 것이다.
[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떻게 될 것인가? ]
1. 조속히 국민과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현재 메르스 사태를 담당하는 공식기구는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다. 그러나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아직 공식홈페이지도 없고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개하는 방안도 마련해놓고 있지 않다. 정보공개는 사태를 진정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2. 메르스 위기는 곧 가라앉을 것이다.
현재 삼성서울병원이 두 번째 감염의 근원지가 되고 있고 메르스는 앞으로도 산발적으로 발생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사람 간 전파력이 낮은 메르스 바이러스의 특성과 병원 외 감염이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메르스 발생은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 것이다. 공기감염이 이뤄지지 않는 한, 그리고 병원 밖 감염이 보고되지 않는 한 걱정할 이유는 없다.
3. 메르스는 현 상황의 심각성보다, 메르스로 인한 후유증이 훨씬 더 큰 문제다.
2003년 SARS가 발생한 중국은 ‘사스 중국’의 오명을 벗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마도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전염병 관리실패로 인한 전염병 창궐국가의 오명은 우리나라로 넘어오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는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이고 그 후유증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가 자랑해왔던 높은 의료수준은 허술한 보건정책과 방역체계의 민낯이 드러남으로써 회복이 어려운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민(民)’이 어렵게 쌓아놓은 공을 ‘관(官)’이 망쳐놓고 있는 상황이다.